닐 올던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1930년 8월 5일 ~ )은 미국의 우주비행사, 시험 비행사, 대학 교수, 해군 비행사로,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이다. 그의 첫 우주 비행은 1966년 제미니 8호였다. 이 임무에서 제임스 스콧과 함께 처음으로 유인 우주선의 도킹 실험을 실시했다. 그의 두 번째 우주 비행은 아폴로 11호로,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착륙했다.
인류의 커다란 한 걸음"을 버즈 올드린과 함께 달 표면을 2시간 반 동안 탐사했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에는 해군 비행사였으며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 후 NASA 고속 비행 기지에서 900회 이상 시험 비행사로 활약했다.
닐 암스트롱은 NASA를 은퇴한 후에 신시내티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 교수'로 지내다가 1979년에 퇴직했다. 닐 암스트롱은 NASA 사고조사위원으로도 2번 활약했는데, 첫 번째는 1970년의 아폴로 13호 사고였고, 1986년에는 두 번째로 스페이스 셔틀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를 조사하는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위원회를 이끌었다.


1971년 NASA를 물러난 뒤 기업들로부터의 유혹들도 있었지만 계속 거절하다가 크라이슬러를 통해 1979년 1월부터 선전에 출연했다. 그 외 전미은행협회 등 주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CM에 출현했다.
그 외에 Thiokol(ATK Launch Systems Group) 등의 기업들의 경영에도 참가했었고, 2002년을 마지막으로 기업 경영에서도 은퇴했다.


암스트롱을 포함해 그동안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모두 미국인이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내지 않았고 소련도 1976년 루나 24호를 마지막으로 달 탐사를 중단했다
※미국과 소련 둘다 70년대 달탐사를 중단하게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달탐사를 중단한 진짜이유가 뭔지에 촛점이 맞추어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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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자료는 위와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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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9년에 이런말을 합니다.


올해로 79세인 닐 암스트롱이 3월30일 자택인 플로리다에서 기자들에게 고백했다는군요......
"1969년 아폴로11호는 달에 갈수있는 기술이 없었다"
"지난 세월동안 미국정부때문에 사실을 숨겨야만했다"

 
"나는 달에가지않았다"

 

현재 그는 작년부터 암에걸려있는 상태라는군요....
현재 미국 NASA는 닐암스트롱의 고백을 전면부정하고 있으며, 이소식을 들은러시아 푸틴이 즉시 조사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원본보기 : http://blog.daum.net/dhfemfhakd/820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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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폴로11호 달에 가지않았다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바로 빌 케이싱(Bill Kaysing)이란 사람이며 자기돈을 들여 <우리는 결코 달에 가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판하게됩니다. 그때가 1974년이었죠..


그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논쟁부분은 다 아시리라보여집니다)


▲나사는 사람을 달에 보낼 만한 기술이 없었다
▲달에서 찍은 사진엔 하늘에 별이 안 보인다
▲진공 상태에서 깃발이 펄럭이며
▲달착륙선 밑에 엔진분사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등을 달에 가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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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싱이 보기엔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말합니다.
케이싱은 달 착륙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미리 연출해 둔 것일 뿐이라는 주장과 함께 더 경악할 만한 주장도 폈게됩니다.
2002년에 낸 개정판에서 그는 화재가 나 실패한 아폴로 1호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승무원들은 ‘거대한 음모’를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말합니다.


국내에도 공중파를 통해 수차례 방영된 적 있는 피터 하이엄스 감독의 <캐프리콘 원>(1978)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화성탐사 로켓은 순조롭게 발사됐다.
승무원들은 우주선에 타지 않고 다른 ‘스튜디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발사한 우주선이 폭발한 것이다.
암살 당할 위기에 있던 주인공은 탈출에 성공, 자신의 장례식장에 나타난다.
폭스TV가 2001년 제작한 다큐멘타리에도 케이싱의 주장은 그대로 반영되게됩니다.

Fox TV- Conspiracy Theory: Did We Land on the Moon? [2001.02.15 방송]

폭스TV의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하죠.
 이제 몇 년 있으면 일본의 달 탐사선이 달 표면을 찍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로 우리가 달에 갔었는지 최종적으로 판명될 것이다.”

 

2007년 8월 16일 카구야(일본어:かぐや) 발사할 예정이다. 기체에 결함이 발견되어 발사가 미뤄지다


2007년 9월 14일 日, 달탐사 위성 '가구야' H2A로킷 13호에 실려 성공적 발사(10:30)
2007년 9월 14일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서
2007년 9월 14일 지상 설비를 포함해 약 550억엔(약 4천억원)을 투입했다.


2007년 12월 가구야 위성은 관측을 개시,
2007년 12월 달 표면의 원소와 광물의 종류 및 분포, 월면의 지형과
2007년 12월 지하 수km까지의 구조를 밝혀내는 한편
2007년 12월 자기 분포와 방사선, 전자, 이온 등에 대한 관측을 예정이다..
2007년 12월 가구야 위성 약 1년 반에 걸쳐 달을 주회하면서 다양한 관측을 행하였다(~2009년 5월)


2008년 5월. 일본우주항공개발기구(JAXA)는


“일본의 달탐사 위성 ‘가구야’가 아폴로15호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흐릿한 사진 몇 장을 내놓았게 됩니다.


일본측의 발표가 나온 며칠 후 러시아의 프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일본의 가구야가 1971년에서 1972년 사이에 아폴로 15와 17호가 착륙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지만, 사진에서는 달 탐사 흔적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미국이 달에 갔다는 자그마한 힌트조차도 제시하지 못했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외신보도에 따르면 쿠바의 학교에서는 ‘달 착륙 음모설’을 공식적인 역사적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2009년 06월  일본 가구야 위성 달의 표면에 제어 낙하하다.


2009년 06월11일 일본가구야 위성 달표면 충돌로 운용 정지된다.
 

2009년 09월23일  AP통신-달은 살아있다… 표면 전역에 물 존재


물의 양은 대단히 적은 편이다.
AP는 730m²(약 220평) 면적의 달 표면 흙을 긁어모으면 겨우 물 한 모금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은 달 표면 전역에 물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접한 뒤 처음에는 측정기계 고장을 의심했지만 위성 3개가 동시에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달에 물이 존재한다는 게 명백하다”는결론을 내렸다
나사는 지난달 수명이 다한 인도의 달 탐사 위성 찬드라얀 1호가 수집한 달 표면의 광파장 자료를 분석해, 물 또는 수산기(수소-산소 화합물)을 검출했다.